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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별부인 뜻, 조선시대 이혼관련 용어 정리 <밤에피는 꽃>

머니의여왕 발행일 : 2024-02-19

지난 17일 최종화가 방영이 된 이하늬 주연의 밤에 피는 꽃에서 기별부인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극 중 박수호(이종원 분)가 조여화(이하늬 분)에게 그를 떠나려는 조여화에게 했던 대사에 기별부인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요 이 기별부인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저처럼 궁금하셨던 분들은 함께 보시면 아하 하실 것입니다. 

 

 

기별부인 뜻 썸네일

 

 

 

기별부인 뜻

기별부인 뜻
기별부인 뜻

 

기본적으로 "기별부인(棄別婦人)"이란 조선 시대에 사용된 용어로, 남편이 아내를 버리거나 내쫓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공식적인 혼인 해소에는 국가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이혼의 경우 청산을 뜻하는 용어로는 '이이(離異)', '이혼(離婚)'도 사용되었지만, '기별(棄別)', '기처(棄妻)', '출처(出妻)' 등 남편이 아내를 버리거나 내쫓는다는 뜻을 가진 용어가 많았는데, 이는 이혼이 남편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조선 시대의 합법적인 이혼은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국가에서 이혼을 강제하거나, 남편이 처에 대해 이혼을 요구하는 두 가지 형태였습니다. 조선 시대의 가족 제도는 유교 이념에 근거하여 엄격한 가부장제를 유지했습니다.

 

남성은 가정의 주인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며, 여성은 복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남편은 다양한 이유로 아내를 기별할 수 있었으며, 이혼의 주된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남편은 처의 간통과 도망, 남편에 대한 위해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처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별부인"은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절대적 권력과 통제를 반영하는 용어입니다. 조선 시대의 이혼 제도와 관련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기별부인 같은 조선시대 이혼 관련 용어들

"기별부인"과 비슷한 뜻을 지닌 다른 단어로는 "기처(棄妻)"와 "출처(出妻)"가 있습니다. 이 용어들은 모두 남편이 아내를 버리거나 내쫓는 행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며, 조선 시대의 이혼 관련 용어들입니다.

 

각 용어의 뉘앙스나 사용 맥락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결정하고 아내를 가정에서 배제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기처(棄妻)의 의미

기처의 뜻
기처의 뜻

 

"기처"는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행위를 더 직접적으로 지칭합니다. 이 용어는 남편이 아내에 대한 모든 법적,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아내와의 모든 관계를 종료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남편이 아내를 기처할 수 있는 여러 사유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 남편은 아내를 기처 하고 다른 여성과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후손, 특히 남자 후손을 낳아 가문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출처(出妻)의 의미

출처의 뜻
출처의 뜻

 

"출처"는 남편이 아내를 가정에서 내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내가 가정으로부터 추방되었음을 나타내며,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아내가 가정 내외적으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남편은 아내를 출처할출처 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간통한 사실이 밝혀졌을 경우, 이는 남편에게 아내를 출처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출처 된 여성은 사회적으로 큰 오명을 쓰게 되며, 재혼 등의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여묘살이 뜻은?

여묘살이의 뜻
여묘살이의 뜻

 

같은 드라마에서 여묘살이라는 단어도 등장하였습니다. "여묘살이"는 조선 시대에 사용된 용어로, 남편이 사망한 뒤 여성이 친정이 아닌 시댁에서 계속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당시 사회의 여성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반영하며, 특히 과부가 되었을 때의 생활양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이 사회의 기반을 이루었고, 여성에 대한 엄격한 도덕규범과 행동 양식이 요구되었습니다. 여성은 결혼 이후 남편의 가족, 특히 시댁을 자신의 주된 가족으로 여기고, 남편의 사망 후에도 시댁에서 과부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여묘살이"는 이러한 사회적 기대를 반영한 생활 양식으로, 여성이 남편의 사망 후에도 시댁에서 살아가며 남편의 제사를 지내고, 시댁 가족을 돌보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한 과부가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남편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남편의 제사를 준비하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댁의 가사 일을 돌보는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를 "여묘살이"의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효도와 충성심을 나타내는 행위로 평가되었고, 과부가 외로움과 슬픔을 극복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여묘살이"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여성은 자신의 가정과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최우선으로 여겼으며, 이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가족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당시의 유교적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또한, "여묘살이"는 과부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지원의 부재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과부가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시댁에서의 생활은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치며

밤에피는 꽃밤에피는 꽃
밤에피는 꽃

 

이상 MBC드라마 밤에피는 꽃에 등장한 기별부인, 여묘살이에 대해 알아보았고 비슷한 단어인 기출, 출처의 의미도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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